책 제목: 예술, 역사를 만들다 01: 그리스와 로마- 정복자 혹은 침략자
우리 꼬마 남자아이들은 히어로물을 좋아한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그들은 자신이 영웅이 되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그리스와 로마시대는 “영웅의 찬미”가 바로 이들의 에피스테메였다. 그 시대 사람들이 남성을 우월한 존재로 여긴 것은 당연하다. 개인적으로 남자라면 고대 그리스 역사를 꼼꼼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가 이토록 남성의 긍정적인 특성을 잘 극대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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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그리스의 조각: 예술을 위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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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단: 남성 숭배 사상; 신체적 우수함, 군인다운 규율
-> 남성이 여성보다 근육이 잘 만들어진다. 그리고 옛날부터 성인식으로 족장들이 어린 소년들이 ‘진정한 남자’가 되었는지 혹독한 테스트를 했다고 했는데 이 엄격한 테스트 혹은 규율이 남성의 야망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2문단: 종교와 분리된 고대 그리스 조각
-> 인간(특히 청소년기의 남성)의 아름다운 육체를 재현했다.
3문단: 예술을 위한 예술이 가능했던 이유
-> 고대 그릿의 물질적 풍요 때문이었다.
4문단: 여성에 대한 관심 전무
-> 호전성(전쟁을 좋아함), 이성(데카르트가 강조했던 그 이성)에 대한 찬양 때문이다. 그나마 전쟁, 사냥에 관련된 아테나, 아르테미스같은 여신들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오호... 그럼 그리스에는 선머슴 같은 여자들을 나쁘게 보지는 않았던 걸까? 내 추측상 그럴 것 같긴 하다. 플라톤이 사냥을 잘하면 암캐, 수캐 상관없다고 했거든. 물론 그 당시에 그 말이 파격적이었다고 하니 일반적으로 여자보다는 남자를 더 우월하게 봤다 해야겠다.
2) 그리스의 극장: 이념 선전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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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단: 연극을 보면 돈을 주는 곳이 있다?
-> 바로 고대 그리스 극장이다. 비극조차도 자신이 온전히 감당하려고 한 오이디푸스. 황금양털과 권력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 이아손과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얀데레 부인 메데이아, 그리고 영웅 테세우스 등이 공연되었다. 그리고 기승전 “크으으~ 역시 영웅은 다르군!” 등의 영웅 찬미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2문단: 정치와 예술의 긴밀한 관계
-> 오늘날에는 정치와 기업(혹은 자본)이 긴밀한 관계였다면 이 시기에는 예술이 그토록 짝짝꿍이었다고 한다. 웃긴건 정치와 연관되면 무조건 그 분야는 그 시대의 욕받이였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예술을 극혐했고 공산주의자 마르크스는 자본을 극혐했다. 하지만 전자는 예술을 그토록 좋아했기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하며 후자는 돈 없이 못사는 한 인간이었다.
3문단: 그리스 비극 특징
->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랑 이야기가 적다. 둘째, 경쟁적이며 호전적이다. 셋째, 펜트하우스처럼 극적인 비극이다. 넷째, 젊고 충동적인 신들이 인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제우스, 헤라보다는 아프로디테, 헤르메스, 아폴론이 인기가 더 많았다.
4문단: 그리스 문화의 쇠퇴
->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항복했다. 이때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지향했던 민주주의를 비난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케토니아의 필리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를 침략한다. 특히 이수스 전투가 유명하다.
5문단: 우당탕탕 알렉산드로스 2세의 활약
-> 이수스 전투 그림에 그는 맨 얼굴로 전투에 임하는 모습이 보인다. 투구 없이 전투에 간다는 것은 그냥 무릎 보호대 없이 인라인 스케이트 타기, 안전보호대 없이 공사하기 아닌가요? 상남자 알렉산드로스 형님이구나. 어린이 여러분은 따라하지 마세요.
6문단: 우당탕탕 알렉산드로스 2세의 활약 2
-> 열정이 넘치는데 자제력이 부족했다. 어느 날 6리터 포도주를 한꺼번에 마셔 시름시름 앓다 사망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그가 재위 기간동안의 영향력으로 중동, 인도, 이집트에 그리스 문화가 퍼졌다.
7문단: 그리스 꿀꺽한 로마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446년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그리스를 정복했다.
8문단: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그리스 문화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화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왜냐하면 비너스같은 누드 소재, 기이하고 자유분방한 그리스 신화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9문단: 그 이후에도 화가들의 영감을 준 그리스문화
->라파엘전파, 르누아르, 피카소에게 영감을 주었다.
10문단: 큰 감명르 받은 루트비히 베토벤
->예를들어 프로메테우스와 교향곡 3번<영웅>이 있다.
3)로마의 실용적인 제국 예술

이미지 출처: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15253
1문단: 그리스와 DALLA DALLA
-> 예를 들어 이탈리아 반도 내 에트루리아 문명이 로마에는 좀 더 현실적으로 발전했다. 신 말고 황제나 귀족을 모델로 했다. 로마 조각은 사심 없는 그냥 장식품이었다.
2문단: 신앙심이 곡 애국심이여~ 로마의 문화
-> 신이 무척 많았고 신앙심으로 포에니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3문단: 로마 제일 잘나가!
-> 카이사르는 가릴아, 이집트를 정복했다. 콜로세움도 건설했다.
4문단: 임맛대로 살다 부패한 로마
-> 노예가 많아지고 귀족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생겨났다. 한번은 노예들이 반란을 벌였는데 이를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라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우스의 3두정치가 이뤄졌다. 특히 카이사르는 황제를 꿈꾸었다.
5문단: 병약한 옥타비아누스는 어떻게 황제가 되었나?
->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했다. 그 후 안토니우스와 양아들 옥타비아누스가 대결 구도였다. BC 31년 악티움 해전 승리로 옥타비아누스는 엄격한 법률, 공공건축으로 자신의 권위를 알렸다.
6문단: 기독교 도시로 바뀐 로마
->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기독교 도시로 바꿨다. 서로마 제국은 476년 멸망하였으나 기독교의 성지, 교황의 도시로 명성을 유지했다. 레오 10세, 인노첸시우스 8세 등 고대 로마 조각품을 열심히 수집했다. 율리우스 2세는 조각을 전시했다. 그 밖에 프랑수와 1세, 펠리페 4세의 타국 왕들도 로마에 관심을 가졌다.
7문단: 로마 대표 유적-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 16세기 알렉산데르 6세가 유적을 발굴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피아노모음곡 순례의 해 2,3,4곡 주제를 여기서 따왔다고 한다.
8문단: 로마 열풍
-> 18세기 초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고 고전주의 화가들은 로마 유적을 풍경화 소재로 삼았다.
9문단: 우수한 로마시대 건축물
-> 브라만데는 판테온의 돔 연구 및 판테온을 모방한 성당을 건축했다. 파리의 팡테옹 역시 이를 본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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