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영화감상

실존주의를 넘어서려고 한 철학자- 미셸 푸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①

밤하늘의별빛 2022. 7. 28. 18:50

책제목: 미셸 푸코, 1926~1984

 

나는 어떤 사상적인 부분에서 많이 외로움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작가가 알고 보니 나와 좀 다른 사상을 가졌을 때 그 감정이 찾아오곤 했다.

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정말 이것은 나만의 고립된 생각인 것일까?’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한 사르트르는 사실 안 끌렸다. 그보다 뭔가 더 가려움을 해소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나의 고독함을 고찰하는 사상가를 발견했다. 그가 바로 미셸 푸코이다.

실존주의 철학자-사르트르, 카뮈

이미지 출처: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90519033949504

 

물론 나는 간단한 유튜브 영상만 봤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철학이 바로 나를 구원하는 가치관이 아닐까 싶었다.

우선 그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그의 생애였다. 이 책을 발견하고 얼른 읽고 싶어졌다.

 

목차는 총 3가지이다.

1부는 어린 시절~청년의 미셸에게 영향을 준 세계에 대해 다룬다.

2부는 미셸의 광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3부는 불꽃같은 사람에서 점차 달라지는 모습의 푸코를 다룬다.

 

우선은 제1부에 대해 내가 인상깊었던 것들에 대해 정리할 것이다.

1부의 제목을 통해 이미 푸코의 성격을 눈치챌지도 모르겠다.

지옥에서의 심리상태를 통해 그는 평생 자살충동에 시달렸고 반항적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푸코는 여느 천재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평범함과 동떨어진 배경을 갖고 있었다.

의사 집안의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으며 그의 형제들도 굉장히 똑똑했다. 남동생의 경우 외과 의사가 된다.

어머니 역시 자부심이 대단했기에 자식들의 교육에 불을 켜고 다녔다. 지금으로 치면 강남 극성엄마 정도?

그녀의 양육 철학에 따라 그는 종종 상위권이었는데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전학을 시키곤 했다.

그는 전학을 하면서 다양한 교사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들이 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다.

 

첫째는 역사선생 몽사베르 신부이다.

괴짜스럽고 지저분한 행세를 하지만 수업을 할 때만큼은 열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웃음과 교훈을 전달했다.

자크스 뱅빌의 '프랑스의 역사'

이미지 출처: 아마존

그는 자크 뱅빌의 프랑스 역사를 읽었고 특히 샤를마뉴 대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팬심이란게 참 신기하다.

세계사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는 철학자가 생겨서 그가 태어난 나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참 놀랍다.

마치 학창 시절에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선생님이 생기면 그 과목에 관심이 생기고,

외국 팝송 가수에 빠지면 그 나라에 가보고 그 언어도 배우고 싶은 것도 이와 같은 것인가.

물론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금사식인지라 언제 프랑스 역사 공부를 못할 수 있다.

최대한 그 애정이 식기 전에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

 

두 번째 영향을 줬던 인물은 장 모로 레벨이다.

비형식적이고 모호한 말을 하는 고교 교사였지만 그는 흥미를 느꼈다.

학문마다 전성기인 시기가 다르다.

1990년대는 컴공, 2010년대에는 전화기(일명 전기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

2010년 중반에는 인문학과 역사열풍.

요즘 코로나시대는 심리학과 정신과학, 뇌과학이 대세이다.

놀랍게도 철학과가 대세인 경우가 있다.

p34 전쟁이 끝난 후 몇 년동안 철학의 권위는 그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세기에는 역사의 시대였듯 20세기에는 철학이 쥐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khs20010327/222133391240

 

세 번째 영향을 준 이는 장 이폴리트였다.

역사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철학의 유혹을 안겨줬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생물학,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철학에 색다른 방향을 볼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858

 

천재였던 그에게도 많은 실패를 겪었다.

고등사범에 입학하기 전 재수를 했었고 또 졸업시험에도 아깝게 밀려 재수를 했었다.

하지만 그는 충격을 받았을지언정 그의 천재성을 믿고 포기하기 않았다.

그 후 그는 고등사범을 졸업하고 다양한 연구를 했다.

특히 그가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들을 정신과 의사 밑에서 무보수로 일하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의사(=이성으로 대표되는 인물)와 환자(=광기로 대표되는 인물)의 관계를 연구하려 한 것이 다른 철학자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

푸코에 대해 알게된 사실 또 하나!

그는 글쓰기기에 강박적인 성격을 가졌다.

p167

“나는 우연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쓰기란 일단 한번 시작하면 그것의 노예가 되어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미지 출처: https://m.hanbit.co.kr/channel/category/category_view.html?cms_code=CMS2187921383

 

추가로 푸코에 대해 깜짝 놀란 기록이 있다.

바로 공산당 가입이었다. (푸코 너마저....?)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p94 나는 맑스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헤겔주의를 거부하면서 실존주의의 한계에 불만을 느끼면서

공산당에 입당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3년 후 그는 탈당했다.

p101 이유는 첫째. 동성애 때문에.

둘째. 공산당의 음모와 날조 때문에. -> 날조에 대해 설명해달라 하자 묵묵부답이었던 그 단체.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렇게 그는 책 말과 사물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맑시즘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한번 돌아서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무서운 적이 되는 법!!

물론 푸코 자신은 니체주의 공산주의자라고 칭했지만 공산당에 탈당했다는 것은 변함없다.

니체가 한 사람 살린 듯하다.

 

... 이렇게 푸코의 청년시절까진 이랬습니다!하고 끝내는게 1부이긴 한데 그의 명작 [광기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개요도 소개된다.

이미지 출처: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710

 

니체에 따르면 고대의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상반된 성격을 가졌다. 아폴론은 규칙이 있으며 지혜를 담당하는 신을 뜻하고 디오니소스는 무질서, 새로움 등을 담당하는 신을 뜻한다. 이 두 신은 모두 동등하게 중요한 신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데카르트라는 철학자 양반이 이성과 광기를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이렇다. 정상인과 광인은 이 상호적이며 양립 불가능한 진실의 희미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푸코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비이성이 우선 파문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까?”

 

그는 실존주의의 한계에 부딪혀

공산당 가입 등의 방황을 했지만

니체주의, 역사, 고고학, 정신과학을 접하면서

그는 그 사상을 넘어선 자신만의 철학을 만든다.

 

그는 구조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우선은 구조주의를 확장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를 뛰어넘기 위해 더 과거로 돌아가

그리스인들의 이성과 광기의 접근을 보고

 

이성과 비이성으로 나눈 대철학자 데카르트를

신랄하게 비판한 폴 푸코 미셸!!! 

과연 광기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2부에서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