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영화감상

[흐르는 강물처럼] 실패라는 그물에서 벗어나는 길

밤하늘의별빛 2021. 9. 16. 11:01

 때때로 도망치거나 피해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엄마가 먹다 남은 눅눅한 콘프레이크, 대용량으로 끓인 미역국, 그놈의 잡탕 된장찌개...를 마주하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우선 저는 남은 콘프레이크는 건더기만 적당히 체에 걸러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잡탕 된장찌개는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보통은 반항하거나 일탈을 하거나 좋아하는 취미로 피신합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이 영화의 주인공들도 그렇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태어난 형 노먼과 동생 폴은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홈스쿨링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요하고 틀에 박힌 생활이었지만 그들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바로 낚시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낚시를 잘할 수 있는지 알려줬습니다. "2시와 10시 방향을 기억하거라!" 형 노먼은 열심히 아버지 말에 순응하며 따랐습니다. 동생 폴은 처음엔 따르다가 점차 미묘한 방식으로 바꿉니다. 낚싯대에 박자를 달리 준다거나 좀 더 멀리 낚싯대를 휘젓는 것처럼 말입니다. 후에 그는 그만의 독특한 낚시 방법을 체득합니다. 

한편 형 노먼은 아버지의 혹독한 글쓰기 수업을 받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내민 종이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절반으로 줄여. 간결하게!" 여러 번 수정을 지시받지만 노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만족할 만한 글이 완성되었으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좋아, 이제 그걸 쓰레기통에 버려." 노먼은 신나게 종이를 구기고 동생과 함께 낚시하러 갔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아버지에게 이런 면이?'하며 신기해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특히 어린 시절에 언제나 공부하라고 하셨고 노는 것을 안좋게 봤습니다.(그래서 몰래 했지요) 그러나 그들의 아버지는 목표에 도달하면 그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하였고 무엇보다 완성된 글을 구기게 하는 것도 인상깊었고 대리쾌감을 주었습니다. 마치 수능이 끝나고 교과서를 냅다 버리는 느낌이랄까!

수능이 끝나고 교과서는 이제 안녕~

이미지 출처: 수능 끝인데 뭐하지?, ‘수능 후 꼭 해야 할 일 10가지’ (wooriclass.co.kr) 

글쓰기에 뛰어났던 노먼은 결국 대학진학을 위해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비록 사랑하는 가족과 멀어졌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맛본 그는 클럽에서 포커도 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교수가 되었습니다.(여기서는 아마 시간 강사, 부교수 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동생은 집 인근의 대학에 가고 지역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어느날 노먼은 잠시 진로의 고민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진로는 어떻게 생각했지? 가르치는 것에 소명의식을 느꼈니?" 노먼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없었기에 산림청(이 시기에는 나무 베는 일이 주 업무였습니다)에서 잠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교수직을 준비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한편 폴은 인싸 기질이 여전하고 독특한 일을 많이 꾸몄습니다. 인도 영국 혼혈인과 연애를 하고(그 당시엔 인종차별 등 좀 폐쇄적인 점이 있었습니다) 격렬한 댄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문제는 집안의 규율을 벗어나는 수위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인도+영국 혼혈인 나오미 스콧

이미지 출처: 파워레인져 출신? 자스민 공주, 나오미 스콧에 대해 (cine21.com)

 

파워레인져 출신? 자스민 공주, 나오미 스콧에 대해

현재 670만(2019년 6월 24일 기준) 관객을 돌파하며 역주행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알라딘>. 공개 전에는 지니(윌 스미스)의 독특한 외관 등으로 많은 우려를 자아냈지만, 뚜껑이 열린 <알라딘>은 개

www.cine21.com

(영화에 인도인 역할이 있었고 그 분은 니콜 버데트라는 미국인입니다 위의 사진은 나오미 스콧입니다.)

저녁식사에 손을 대지 않고 친구들과 밤늦게 술을 마신다거나 도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도박판에 거는 돈의 규모도 점점 커져갔고, 결국 엄청난 빚에 도망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의 장례식 이후 아버지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온전히 이해할 순 없으나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는 주인공인 맥클레인 목사의 발언중에서 “완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감동적인 대사가 있다.

출처: 흐르는 강물처럼, 최고 명대사는 뭘까?…‘감동 폭포’ - 코리아데일리 (ikoreadaily.co.kr)

 

흠... 단순히 폴이 독특한 일, 상식 밖의 전혀 새로운 일을 꾸며내는 것을 통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싸늘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실패의 받아들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노먼은 자신의 재능을 키우면서, 그리고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속에서 실패를 이겨내는 힘을 길렀습니다. 노먼의 여자친구 제시 번스는 폴처럼 자유분방하지만 자신의 신념이 확고한 인물이었습니다. 폴은 원만한 대인관계, 매력, 뛰어난 예술성을 가졌으나 정작 도망치는 법만 알았지 실패를 감당하는 방법은 몰랐던 것입니다.

당당하고 주장이 확고한 제시 번스

이미지 출처: Adeline's Attic Vintage : A River Runs Through It, II (lettersfromhomefront.blogspot.com)

당장 나에게 이천, 삼천만원의 빚이 아니라 (솔직히 대부분 대학생들 학자금 대출때문에 이정도 빚은 있을걸...) 10억의 빚이 있다면 진짜 절망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폴이 만약 실패해도 괜찮다는 경험, 또는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 아니면 하다못해 지인들에게 배울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현재 우리나라는 폴같은 청년에게 실패를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주었을까요?

외모지상주의, 인종차별, 온갖 범죄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 없습니다.

이 험악한 세상에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도 됩니다. 

일본 드라마-도망치는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이미지 출처: gyY4mdluy6XkZNQ4U57Lb4RayhS.jpg (650×366) (themoviedb.org)

대신 다시 돌아와서 세상과 맞서는 방법을 배우면 폴이 다른 결심을 하지 않았을까요.

하다못해 다른사람이 없다면 나 스스로가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어떨까요.

 

이 영화의 명대사를 다른 말로 뒤집으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롯이 나 자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분명 나를 사랑하지만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시겠지요. 대신 나를 사랑하고 지지한다면 실패에 조금은 맞설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속 브레드 피트

노먼도 폴도 힘겨운 인생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도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무엇보다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서 내 안의 잠재성을 꽃피워냈으면 합니다. 그리도 더 나아가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하고 배척하는 사회도 변화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