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사는 지역도서관 1층을 평소처럼 지나치다 발견했다.
바로 전원경 작가님이 강연을 하러 오신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돼!”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와 이번 라인업 미쳤는데...’하면서 그 날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 감격스러운 일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써보려 한다.
목차
<1부>
클림트 왈 “나 이런 사람이야~”
화려 도시 원탑 빈 오스트리아
3. 세기 말 선봉장 상징주의, 표현주의, 정신분석학
클림트 왈 “나 이런 사람이야~”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사실 이름, 작품 키스를 보면서 ‘위플래시’의 음악교수처럼 굉장히 날카롭고 괴팍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도치 않게 클림트 화가의 사진을 봤을 때 웃음이 나왔다. “푸근한 인상이시네~ ㅎㅎ”
그는 푸근한 인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리더쉽 있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노력하여 17세~18세에 사업을 이끌어 대성공을 이뤘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을 표현하려고 죽을 때까지 노력했다.
특히 아버지 직업이 금세공 장인이었는데 금을 이용한 작품들이 꽤 많다.
이 예술가는 ‘키스’라는 작가님이 표현하시길 ‘독창적 아름다움’을 지닌 명화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작품은 천재가 또다른 천재에게 영향을 주듯 일조으이 연쇄 사슬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반다이크-스튜어트 공작과 그레이엄 배트슨 초상화가 있겠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danggan0912&logNo=220379564504,
https://www.pinterest.co.kr/pin/781444972821561355/
작가님께서는 왜 일반적인 화가들처럼 어떤 명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을 형성했는지 그 뿌리를 찾고자 하였고 그 단서가 바로 빈 오스트리아이다. 빈 오스트리아에 대해 알아보자.
2. 화려 도시 원탑 빈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여러 유럽 국가들 사이에 있는 곳 중 하나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 ‘비엔나’(영어로 비엔나이고 정식 명칭은 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줄줄이 비엔나...를 떠올리겠지만 빈은 보통 커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멋진 건물들.

이미지 출처:
오스트리아에서는 워낙 예술적인 명소가 많고 음악이 유명하다보니 호텔을 투숙할 때 특이한 서비스도 있다고 한다.
바로 티켓 구매 서비스!!


출처: https://www.agoda.com/opera-suites/hotel/vienna-at.html?cid=1844104
우와... 호텔에서 티켓 구매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선 간단하게 유명한 것으로는
1) 슈데판 대성당

이미지 출처: 트리플
2) 스페니쉬(임페리얼) 라이딩 스쿨

이미지 출처: https://www.dw.com/en/performing-horses-the-worlds-first-classical-riding-school/g-18542117
3)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여기 앞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로마 신 아테나 여신이 있다. 히히 올림푸스 가디언 열심히 봤었는데.
유명 장소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굉장히 화려한 궁중 유산들이 많다.
이 말은 즉슨 황제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다양한 건물을 지은 것이다.
즉 오스트리아는 보수적인 나라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있는데 작가님에 따르면
궁정 무도회(여기서 남녀들이 열심히 춤을 추고 짝을 찾는다), 에티켓, 복장의 탐닉, 거기에
오스트리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동상까지!!
*여기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하면 의아할 수 있겠는데 노래를 들어보면 ‘어, 나 가전제품 광고에서 들어본 적 있다!’고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음악들도 들어보니까 처음엔 헨델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이 음악에 대해 알아봐야 겠다. 또한 오스트리아는 보수적인가 여성 연주가들은 굉장히 적었다..
3. 세기 말 선봉장 상징주의, 표현주의, 정신분석학
그는 예술 의뢰 작업을 시작했을 때가 학교에 입학하고 부르크 국장 천정화를 그렸을 때였다.
이때 실내장식에서 프레스코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프레스코가 젖은 벽에다 빨리 채색을 하는 것으로 신선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래서 오뚜기가 프레스코 이름을 차용했나보다)

어쨌든 그는 초기에는 고대~르네상스의 아름다운 전통적 예술을 주로 했다.
하지만 세상은 세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때부터 상징주의, 표현주의, 정신분석학이 대두되었다.
1) 상징주의
모네, 피카소처럼 자기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를 다루는 인상파에 반기를 들며 생겨났다.
죽음, 꿈 영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ex) 죽음의 섬
2)표현주의
모든 것이 액체처럼 흐물흐물해 보이는 뭉크의 절규처럼 자신이 느끼는 것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이다.
3)정신분석학
프로이트(1856-1939)가 꿈의 해석이라고 여기에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는 리비도가 있고 이에 따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의 다소 과격한 주장을 했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클림트는 이러한 흐름에 따라 ‘빈 분리파’의 창시자가 되었다.
다음 시간 2부에서는 빈 분리파의 업적과 한계, 클림트의 작품들, 클림트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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