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영화감상

[나이팅게일과 장미] 개인에게 이데아를 강요하지 마라

밤하늘의별빛 2022. 2. 21. 16:22

이미지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376683956341579180/

나이팅게일이라는 싱그러운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순수함을 가진 이 새는 한 젊은이의 사랑에 대한 열망에 감동한다.

 

우리는 사랑을 왜 하는가?

보통은 3가지로 이야기하곤 한다.

쾌락설: 사랑은 즐겁고 쾌락을 준다.

사랑설: 성의 목적은 정신적인 사랑이다.

생식설: 성의 목적을 출산으로 한다.

 

이 젊은 청년은 붉은 장미 한 송이만 있다면 그녀와 춤을 출텐데, 손을 잡을 수 있을텐데... 그녀를 안을 수 있을텐데!”

하며 괴로워한다. 청년은 사랑설을 믿고 있다.

 

평소에 사랑에 관한 노래를 즐겁게 부르던 나이팅게일은 젊은 청년에게 아름다운 정신적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한다. 반면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도마뱀은 어이없어한다. 아마도 쾌락설, 생식설을 믿는 모양이다.

출처: 위키백과, 영화<작은아씨들>, 1boon

 

새는 아픔을 이겨내며 자신의 심장을 가시로 박으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노래가 아름답긴 하지만 진실따위는 없는 예술가같다며 폄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팅게일의 노력(또는 음악)은 폄하했으면서 붉은 장미(새의 결과물)에는 찬양한다.

내가 본 붉은 장미 중에서 제일 아름답다!”

한편 젊은이는 그 꽃을 여자에게 주었지만 교수의 딸은 꽃보다는 보석을 더 좋아했다.

다들 청년과 교수 딸에게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이 어리석은 자들아! 왜 사람 마음을 짓밟는거야??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 칼럼니스트는 일침을 가한다.

이게 모두 플라톤적 사유의 여파이다.

플라톤은 순수 사유의 영역을 너무 과도하게 평가함으로 실제적 삶의 경험과 역사적 현상들을 무시하였다.

피사레프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가지고있는 폐해를 이렇게 말한다.

'플라톤은 삶의 역사적 현장과 경험들을 간과하고 있다.'

원래 철학은 시장, 전쟁터 심지어 하수구통에서 발생했다.

이런 철저한 현장 중심의 철학이 상아탑속으로 들어가면서 철학은 개인을 억누르고 공적개인들에게는 과도한 영광과 칭송을 돌리게 된 것이다. 철학이 실제경험과 같이 가지 않고 지금처럼 경험과 단절되어 있다면 익명의 개인들은 계속해서 오스카 와일드의 나이팅게일과 같은 처지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출처: https://www.injurytime.kr/news/articleView.html?idxno=13043

 

=> 결론: 플라톤의 이데아론; 현실을 단지 그림자로 폄하. 추상적인 것에 감탄하는 것.

 

그래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의견이 달랐다.

니체, 비트겐슈타인, 아인슈타인도 형이상학을 싫어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했다.

플라톤의 사상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사상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때로는 개인의 희생 또는 가치관을 무참히 밟아버릴 때도 있다.

 

플라톤주의자들, 형이상학자들이

가끔은, 아주 가끔은 형이상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배척하지 않았으면 한다.